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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살까 지을까 고민된다면

qwea85 | 조회 2091
집, 살까 지을까

통영에 자리를 잡기로 결심한 후, 우리 부부가 가장 먼저 고민해야 했던 현실적인 부분은 '집'이었다. 살아가고 싶은 곳이 어디가 됐든, 생활할 공간을 구하지 못함에야 모두 헛된 공상에 불과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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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게스트하우스의 외부. 통영의 바다처럼 짙푸른 녹색을 선택해 칠했는데 맑은 날에는 꽤 상쾌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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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기가 마무리되고 입주 청소를 끝낸 작은 거실로 스며든 햇살은 그 자체로 고단했던 나를 위한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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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작은 집이라 설계도면은 단순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와 아내는 몇 차례 통영을 오가며 전세를 구하려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워낙 작은 도시다 보니 주택 매매가 그리 활발하지 않았고 임대 형태 역시 전세보다는 보증금과 월세가 섞인 반 전세 형태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통영에서는 부동산보다 마트 게시판에 개인적으로 붙여놓은 매매 정보가 더 유용할 때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는 분에게 틈틈이 소식을 전해달라 부탁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매물은 쉽게 나오질 않았다.

내려가기로 한 시기는 다가오는데 전세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우리는 고심 끝에 결국 우리 생애 첫 집을 구입하기로 했다. 물론 아파트였다. 베란다를 통해 통영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침실의 뒤창을 통해 고깃배가 오가는 운하를 조망할 수 있는 꽤나 낭만적인 아파트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생활한 기간은 채 1년을 채우지 못한 11개월뿐이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로 마음을 먹으며 작은 시골(그렇다. 이곳 통영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시골'이라 부르는 곳이다.) 마을로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서울에서 통영으로 내려오는 것보다 더 힘이 들었다. 우선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매물로 나온 집을 구해야 했고 그 집이 게스트하우스와 어울려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우리가 쓸 수 있는 예산 범위 안의 가격표를 붙이고 있어야 했다.

나는 그런 집을 찾느라 통영을 몇 바퀴나 무시로 돌아다녀야 했는데, 그렇게 두어 달이 흐른 후에야 계획했던 것보다는 조금 작은 면적의 집을 구하게 되었다. 다만 제주도의 많은 게스트하우스들이 그러하듯 위채와 아래채가 온전하게 남아 있어 간단한(짓는 것에 비하자면야 리모델링이 간단한 것이 사실이니까.) 수리만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착한 집'은 아니었다.

지은 지 대략 20년이 지난 위채와 발로 뻥 차면 아무렇지도 않게 무너져내릴 것 같은 아래채라 불리는 불법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는, 건물 두 개가 있는 집이었다. 우리의 계획은 이랬다. 우선 그나마 수리가 가능한 위채를 리모델링하고 아래채는 허물어버린 후 거기에 새로 집을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위채는 우리 부부의 살림집으로, 새로 지은 집은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랬다.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집 한 번 지으면 수명이 10년은 단축된다'는 주위 사람들 만류를 경험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각종 인허가와 설계 의뢰, 업체선정 등 결정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마침 아내가 진주에 있는 한 건축업체의 홍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건축의 흐름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을 한 후 우리만의 집을 지어보기로 했던 것이다.

불과 1년 사이에 집을 매매하고 또 짓는, 아주 흔치 않은 경험이 시작됐다. 우선 시작한 일은 살림을 할 위채의 리모델링이었다. 단열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벽과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수도관, 과연 제 기능을 했던 것인지 의문인 화장실 등을 '서울에서 고생 없이 지내다 내려와 살기로 마음먹은 30대 부부'에게 어울리게 고치는 데에는 대략 보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집이 워낙 작아서 일이 빨리 진행된 덕분이었다.

도배할 벽지를 고르고 바닥에 깔 장판을 고르는 한편 욕실에 설치할 도기를 둘러보는 일 역시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가장 싼 것에서 바로 위 등급'을 고르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내부가 바뀐 집으로 이사한 것이 한창 햇볕이 좋던 5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를 짓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잠을 잘 때도 용적률과 건폐율이라는 단어가 눈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경험을 했지만 어쨌든 문제는 해결되어 1, 2층을 합해 약 60㎡밖에 되지 않는 목조주택의 터 잡기가 시작되었다.

측량해놓은 자리에 맞춰 거푸집으로 기초를 만들고 거기에 콘크리트를 타설했던 날은 다행스럽게 햇살이 지나치게 강한 날도, 그렇다고 비가 오는 날도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덕분에 예상했던 날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당연히 생활은 조금 불편해졌다.

이러저러한 건축 자재들이 집 입구부터 마당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보니 출퇴근을 하는 아내는 현관문을 드나들 때마다 허공의 줄을 타듯 위태롭게 발을 내디뎌야 했고 한겨울 눈처럼 소복이 쌓여 있는 톱밥가루는 호시탐탐 바람을 타고 집 안으로 날아들 기회만 노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곤욕인 것은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공사 때문에 집이 모두 지어지는 날까지 의도치 않게 매일 아침 조기 기상을 해야 했던 점이다. 특히 각종 공구의 전원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침실 창문 바로 아래에 있는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창밖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눈을 뜸과 동시에 한 뼘도 안 되게 창문을 열고 이쪽으로 넘어올 플러그를 기다렸다. 멍하니 침대에 앉아서.

다행스럽게도 집을 짓는 동안 그리고 완공이 된 후에도 큰 문제는 없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웃들로부터의 어떤 민원도 없었다. 정말 고마웠다. 매일같이 시끄러운 소음을 내던 서울부부에게 한마디 타박도 하지 않은 그분들에게 이 지면을 통해서라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해드리고 싶다.

그렇게 고치고 새로 지은 집은 예상보다 견고하다. 지금까지 물이 새거나 금이 가거나 허물어진 부분은 없다. 덕분에 작년 5월에 태어난 아이는 잘 자라고 있고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손님들은 숙면을 경험하고 간다며 고마워한다. 참 '다이내믹'한 과정을 그럭저럭 잘 버틴 것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을 나는 요즘 종종 하곤 한다. 통영에서 세 번째 그리고 이 작은 시골집에서 두 번째 봄을 맞이하려는 이 계절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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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의 작은 집들 너머로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통영은 아주 오래된 주택과 최신식 아파트가 혼재돼 있는 재밌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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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를 하기 전의 우리 집. 우물도 있었는데, 쓸 일이 없을 것 같아 메워버리자 동네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영화 「링」을 안 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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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의 터 잡기였지만 기술자 아저씨는 꼼꼼하고 정확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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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사하기 전, 공사 진행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들락거릴 때마다 심란한 마음은 오히려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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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를 올리고 있을 때만 해도 우리 집이 어떤 모습으로 탄생하게 될지 잘 상상이 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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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고를 높이다 보니 계단은 한 번 틀어져 내려오게 됐는데, 덕분에 계단에 앉아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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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의 특성(?)을 고려한 벽지로 도배된 여자 도미토리. 저 멀리 보이는 초록 바다와 연한 핑크가 부조화의 조화를 이룬다고 우겨보고 싶다.

정환정 씨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 잡지사, 여행사, 기업 홍보 에이전시 등에서 일하다가 여행에 꽂혀 『나는 아프리카에 탐닉한다』를 쓰고 여행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홍대 앞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남쪽 바닷가 도시 통영에 정착해 게스트하우스 '뽈락하우스'를 열어 운영하고 있으며, 서울 살 때는 미처 몰랐던 남해안의 맛과 멋을 혼자만 알기 아까워 『서울부부의 남해밥상』을 썼다.

기획_오영제 기자 사진_정환정

레몬트리 2014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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